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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30년 지킴이] 68년 세월이 담긴 '서울양복점'

새로운 바람 2022. 5. 3.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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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30년 지킴이] 68년 세월이 담긴 '서울양복점' - 인천투데이

인천투데이=황현욱 기자 l 인천 중구 경동 거리는 오래 된 상점들이 즐비해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양복점의 큰 간판이 유독 눈에 띄었다.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인덕(67) 재단사가 환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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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30년 지킴이 ⑪ 중구 서울양복점
어깨너머로 기술 터득한 서인덕 재단사
“양복은 멋보다 사람에 맞춰 만들어야”


인천 중구 경동 거리는 오래 된 상점들이 즐비해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양복점의 큰 간판이 유독 눈에 띄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인덕(67) 재단사가 환한 미소로 맞이해줬다. 그리고 그는 그가 만든 양복을 보여주는 것으로 68년 세월이 담긴 양복점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인덕 재단사는 1976년 양복 재단사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기술을 터득했다. 그 후 1983년에 직원으로 일 하던 ‘화신양복점’을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화신양복점에서 2014년까지 31년 간 양복점을 운영했다. 그러다 1953년 개업한 옆집 서울양복점 사장의 부탁으로 2014년 서울양복점까지 인수했다. 현재 상호는 서울양복점이다.

어깨너머로 터득한 양복 재단 기술

그는 인천 만석동에서 나고 자랐다. 군대 전역 후 주변에서 “양복 기술 좀 배워봐라”라는 권유를 받고 경동에서 양복 기술을 배웠다. 당시에는 모두가 살기 어려워서 어떤 일이든지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옛날에 지금보다 훨씬 못 살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어지간히 공부를 잘 하는 게 아니면 공장에 다녀야 했다. 그나마 눈썰미가 있어 남들 하나 배울 때 둘을 터득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들은 자기 일을 뺏길까봐 기술을 잘 전수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스승도 없었고, 어깨너머로 보고 연습하고 혼자 터득했다”고 전했다.

그는 약 45년 동안 양복 만드는 일을 했다. 지금과 다르게 1970년대에는 인천기독병원부터 경동사거리까지 양복점이 40여개 있었다고 말했다. 양복점이 연달아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양복거리가 됐다고 했다. 그만큼 양복점이 호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 집 건너 양복점이 있을 정도로 그렇게 호황이었다. 나도 하루에 7~8벌씩 만들었다”며 “인천 손님들이 양복 맞추려면 이 동네까지 왔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서 “돈이 많은 사람은 양복점이 호황이다 보니, 돈을 더 벌려고 재단사를 따로 고용해 양복점을 차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러다가 그 집에 있던 재단사가 자기 가게를 따로 차리면 손님들도 재단사 따라 가면서 원래 가게가 망하는 것도 봤다”고 말했다.

1990년대 양복도 기성복이 확산하면서 수제 양복의 인기는 급속도로 식어갔다. 양복점이 40여개에 달했던 경동거리에도 이젠 3곳 밖에 남아있지 않다.

“우리 집에서 양복 맞춘 사람은 계속 맞춘다”

그에게 일하면서 보람 있던 일화를 물었다. 그는 “양복을 맞춰 입는 사람은 계속 맞춘다. 몇 년이 지나도 옷이 망가졌다고 한 적이 없다”며 “한 번 일을 할 때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그런지 맞춤 후 수년이 지나도 불평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을 묻자 가게를 자주 찾는 손님을 이야기했다. 서씨가 말한 그 손님은 가게에 와서 옷감을 고르고, 전에 만든 것처럼 해달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그 손님은 한 번은 다른 양복점에서 만든 양복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는데 서울양복점과 다르고, 기대에 못 미쳐 몇 번 못 입고 버렸다고 했다”며 자신의 양복 재단에 자신감을 표했다.

“양복은 사람에게 마술 같은 옷”

서 재단사는 “양복은 입는 사람에게 맞춰 제작해야한다”고 말했다. 멋 내는 것에 치중하면 오래 못 입는다고 했다.

양복은 여러 단계를 거쳐 제작된다. ▲손님 몸 치수 재기 ▲치수 잰 것을 종이에 뜨기 ▲천에 맞춰 오려놓기 ▲가봉(임시 옷) 만들기 ▲만든 가봉을 손님에게 입히기 ▲손님에 맞춰 수정하기를 거쳐 재단하면 완성된다.

그는 “사람마다 키도 다르고, 체형도 다른데 똑같이 만들 수 없다”며 “뚱뚱한 사람은 날씬하게 보일 수 있고, 날씬한 사람은 넉넉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양복은 체형에 따라 보완이 가능한 옷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양복은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 옷이라고 했다. 그는 “보통 양복의 유행은 10년 주기로 바뀐다”며 “정장 상의 뒤 쪽을 어떻게 트느냐에 따라 유행이 바뀐다”고 말했다.

크게 세 가지 유형이다. 우선 트느냐 안 트느냐로 구분하고, 트면 트는 방향이 가운데냐 양쪽이냐에 따라 나뉜다고 했다. 요즘은 양쪽 다 트는 게 유행이라고 했다.

그는 또 양복은 세계 사람들이 즐겨 입는 옷이고, 옷 중에서 질리지 않는 옷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옷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복은 몸이 휘었어도 입으면 몸이 반듯하게 보여주는 옷이다. 참 어려운 기술이다”며 “마술 같은 옷이다”라고 말했다.

“내 목표는 제자를 제대로 키워보는 거야”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양복 만드는 일에 보낸 그에게 오래된 가위가 있다. 그는 그 가위를 들어 보이며 “나는 이 가위만 사용한다. 이 가위는 가볍고 종일 들어도 힘이 안 든다. 이 가위가 없으면 일을 못 한다”며 가위와 일심동체라고 했다.

인터뷰 중 양복점을 가업으로 이을 생각이 없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양복점을 이을 사람이 없어 나까지만 하려 한다”며 “자식에게도 배우라고도, 물려받으라고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업으로 양복점을 물려줄 생각은 없지만 제자는 키우고 있다고 했다. 서씨는 지인으로부터 제자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제자는 대학에서 의상학과를 전공했으며, 현재 신포동에서 양복점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제자도 잘 안받아주는 성격이다. 상대가 한 번에 못 알아들으면 내가 답답해서 못 한다”며 “그런데 지금 제자는 하나를 말하면 다 알아 듣는다. 그래서 제자로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내 남은 목표는 이 제자를 훌륭한 양복 재단사로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양복점 업계에서 이제 하산해도 된다고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훌륭한 재단사를 양성하고 싶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