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세종시 장례식 조의문>
수도이전, 옛말로 천도라 함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통시적으로 그 의미가 많이 변화해온 개념이다. 전근대 국가는 왕과 중앙관청을 중심으로 한 중앙정계가 권력의 중요한 원천이었고, 그 나라의 유력자들은 각자 수도 근교의 식읍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다.
이런 전근대 국가의 관료중심, 지역중심 권력체계 하에서 천도를 단행하게 된다면, 왕에게 올라가는 진상품, 중앙관청 식솔들의 녹봉으로 움직이던 수도 경제가 붕괴되면서, 여기에 발을 담그고 있던 기존 집권세력의 힘이 크게 떨어진다. 그리고 새 수도가 위치하게 되는 그 지역과 근교의 토착세력에서 새로운 인재를 발굴할 수 있게 된다.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했다, 태조 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서울을 옮겼다, 이런 기록에서의 천도의 의의는 집권세력의 교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전근대 국가에서의 천도는 왕의 권력이 강할 때 가능한 일이고, 왕의 권력을 더 강화시키려 할 때 사용되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게 현대국가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의 글의 요점이다. 현대국가에서 관청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수도 근교의 토지를 기반으로 삼는 중앙호족세력도 없거니와, 대부분의 경제활동은 민간에 의해 자생적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현대국가에서 정부 부처가 죄다 짐싸들고 내려가도 서울의 도시기능이 끄덕도 없고, 내려간 지역도 전혀 활성화가 안되는게 그래서 당연한 일인 것이다. 더이상 경제주체들이 국가기관에 의존적이지 않으니까. 아니, 세상천지에 20세기 이후에 행정수도 개설해서 그 도시가 진짜 수도로 자리잡은일이 어디 있던가? 누가 호주의 수도를 물어보면 열의 예닐곱은 시드니라고 답한다. 미국의 수도를 물어도 심심찮게 뉴욕이 나온다. 통일 전 독일의 수도가 어디였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 캔버라도 망했고, 워싱턴도 망했고, 서독시절 본도 망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행정수도 세종시 기획안은 이런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멍청한 관료들의 똥이다. 그리고 그 주택가격을 가리키며 죽은 자식 부랄 만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런 전근대와 근대 이후의 세상의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세종시를 성공시키려 했으면 굵직한 기업과 협의해서 본사 이전을 추진했어야 했다. 이제 세상의 심장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경제권력에 있으니까.
세종시의 앞날은 어둡다. 그 정부부처 근무자들의 못잡아도 1/3은 서울에서 출퇴근 하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 집을 두고 세종시에는 자취방을 얻어서 근무하고 있다. 이런 뜨내기들로는 도시가 만들어질 수 없다. 그 급여가 도시 안에서 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한창 공부해야 할 아이를 데리고 허허벌판인 세종으로 내려올 과장이상급 공무원이 있을까? 그렇게 양산된 기러기아빠들의 돈이 세종시에서 소비될까, 서울에서 소비될까?
난 경남 창원이 고향이다. 난 신도시가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몸으로 체험하며 자란 사람이다. 그래서 세종시가 왜 안되고 왜 실패하는지가 보인다. 창원이 성공한 것은 대우, 두산, stx가 들어와서이지, 경남 도청 나부랭이가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도청을 진주로 일부 이전한다 했을 때 창원 경제는 미동도 안했지만, stx가 무너지고 두산중공업이 탈원전으로 골골대자 상남동 상가가 비기 시작했다. 이게 현실이다.
정치권 탓만 하기에도 이 사태는 지역민들의 시대착오적 욕심이 너무 크게 작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제-교육도시안보다 노근혜의 원안고수 방침에 열광한 것이 충청도 사람들 본인들이었다. 이제 와서 누굴 탓할까?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집값은 신기루이며, 더욱이 흐르는 돈도 아니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가 1도 없으며, 그렇기에 세종시 인프라 활성화 역시 전망이 어둡다. 새로 지어서 때깔만 고울 뿐, 속은 곪아 썩어가고 있는 도시다.
망해가는 세종시를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11번가 앱을 열어 팝콘을 대량주문하는 것 뿐이다.
https://m.dcinside.com/board/city/1705029?headid=&recommend=1&s_pos=-1668234&s_type=subject_m&serval=%EC%84%B8%EC%A2%85
도시이야기/경기도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