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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대한제분서 첫 밀가루 생산…인천식 냉면도 등장
독특한 면요리 명맥 이어…면 역사 담긴 누들플랫폼 개관
인천과 면(麵)의 얽히고설킨 역사는 1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항이 개항한 1883년 이후 인천은 외식업의 '성지'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지역 고유의 개성을 간직한 면 요리들이 있었다.
인천과 뱃길이 닿아 있던 북한 평안도 이북민들은 개항 이후 이남으로 넘어오며 평양냉면을 함께 전파했다. 이남에선 생소하던 이 음식은 이후 지역 특색이 묻어난 '인천냉면'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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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국물을 주로 쓰던 평양냉면과 달리 인천냉면은 소뼈나 소고기를 푹 고아 낸 육수로 깊은 맛을 더했다.
인천의 원로 언론인 고일씨는 1955년 집필한 '인천석금'에서 "냉면은 평양이 원조라고 하지만 인천 것을 못 따랐다"며 인천냉면을 치켜세웠다.
어업이 발달한 지역 특성상 생선 냉동을 위한 얼음공장이 여러 곳이 있었기에 인천 냉면은 여름에도 차가운 육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냉면이 사계절 음식으로 자리 잡은 계기 중 하나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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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의 주재료인 밀가루를 만드는 제분공장도 6·25 전쟁 이후 인천에서 최초로 가동됐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내 생산시설이 대부분 파괴되면서 유엔(UN) 구호 물품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밀을 가공할 시설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마침 인천 중구 북성동에는 1935년 11월 일제가 한반도 수탈을 위해 만든 제분공장이 광복 이후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인천항과 인천역 철도가 모두 가까운 이 공장은 1952년 말 '대한제분'이라는 이름의 제분공장으로 재탄생했다.
대한제분은 당시의 높은 문맹률을 고려해 사람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암소·코끼리·곰 등의 동물 상표를 제품에 붙였다. 이 중에서 뽀얀 밀가루를 상징하는 북극곰이 그려진 '곰표' 밀가루는 아직도 대한제분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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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는 기존 면 요리가 명맥을 이어가는가 하면 색다른 면 메뉴가 잇따라 개발되기도 한다.
동구 화평동에는 냉면 그릇이 세숫대야만 하다는 의미의 '세숫대야 냉면' 거리가 남아 있어 여름철마다 손님을 이끈다. 1990년대 중반 한 음식점에서 한 그릇에 2천500원짜리 무한 리필 냉면을 내놓은 것이 이 거리의 시초다.
본래는 인쇄업소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지만 이 가게가 이른바 대박을 터트리고 다른 냉면집들이 앞다퉈 문을 열며 지금의 냉면 거리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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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 거리 인근 누들타운에서 젊은 요리사가 창업한 '개항면'이 색다른 면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쫄면 발상지로 알려진 광신제면에서 공수해온 생면을 진한 사골 육수에 말은 온면을 주요리로 선보인다.
신구(新舊)가 조화를 이룬 개항면은 어느덧 또 하나의 지역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기존의 면 요리가 새로운 요리로 재생산되는 모습을 지역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나채훈(75) 인천시 중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인천항 일대 역사와 연결되는 각양각색 음식문화를 토대로 이런 퓨전도 생겨나는 것"이라며 "올가을쯤 이들 가게에 대한 지원 등 인천만이 가진 면 관련 콘텐츠들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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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에는 중구 경동에 '누들(noodle) 플랫폼'이 문을 열면서 인천이 명실상부 면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다.
지상 3층·지하 2층 규모의 이 플랫폼 1층 전시관에서는 짜장면, 인천냉면, 쫄면, 튀김우동 등 인천에서 태어난 면 요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에는 소극장과 컵누들 만들기 체험공간이 자리를 잡았다. 지역 상인과 예비 창업자들이 함께 면 레시피를 개발하고 관련 창업을 지원할 공유주방과 요리 공간도 3층에 지어졌다.
2년 넘게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체험공간이나 공유주방은 아직 닫혀 있지만, 전시관은 계속 운영 중이다.
누들 플랫폼을 관리하는 중구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3층 공간은 임시 폐쇄됐지만 추후 상황에 따라 다시 문을 열 것"이라며 "체험을 통해 면에 얽힌 역사를 흥미롭게 배울 수 있는 공간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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