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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료

불평등 게임의 규칙, ‘균형’으로 조정한다~시사인기사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59

불평등을 ‘알아서’ 균형으로 수렴시켜주는 질서 같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균형이 붕괴하는 질서가 분명히 있다. 어떤 진보주의자들은 여기에서 보수와 차별화되는 진보의 원칙을 발견한다.

균형이 자생적 질서에 달려 있지 않다면, 어떤 경우에는 수렴하는 힘보다 증폭하는 힘이 세서 불균형이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면,

정치가 할 일은 그런 불균형을 바로잡고 수렴하는 힘이 다시 우세해질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바꿔주는 것이다. 이 논리를 따라가 보면 균형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접근방식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균형점으로의 수렴이 아니라 증폭이 기본적인 힘이고, 그걸 제어하여 균형을 복원하는 시도를 정치가 한다.

이것은 20세기에 익숙한 진보주의의 아이디어들과 꽤 거리가 멀다. 20세기에는 시장 자율보다는 경제계획, 성장보다 분배 등이 진보의 이미지를 구성했다.

이것은 마치 자율 대 통제의 대결처럼 보였는데, 이 구도에서 통제가 자율을 이길 방법은 많지 않다.

‘균형’은 다르다. 이 아이디어는 자율과 시장과 자기조정의 힘을 긍정한다. 다만 그런 힘들이 균형을 잃지 않고 작동할 수 있으려면 때로 정치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는 영남 지역주의, 수도권 집중, 양극화, 친미 편향 외교라는 불균형 상태와의 싸움으로 점철되었다.

노 전 대통령은 각각의 영역에서 선거제도 개혁, 지역 균형발전, 격차 해소, 동북아균형자론을 내세워 균형의 복원을 시도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에릭 리우는 정치의 이런 역할을 ‘정원사’에 비유했다. 정원사는 생태계 자체의 작동에 맡기고 물러나 있을 줄 안다는 점에서 20세기 진보주의와 다르다.

하지만 그는 생태계가 잘 굴러가도록 웃자란 개체를 쳐내고 다듬는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와 다르다.

균형이란 아무래도 진보적 개념인 이유가 이제 확인됐다. 진보주의자에게 균형이란 가만히 기다리면 도달하는 물리법칙이 아니라, 힘써 추구하고 가지치기를 해줘야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프로젝트다. 그래서 이것은 정치의 기획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