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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답사/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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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 중심지인 중구 신포동~신포국제시장~개항로 일대를 다녀왔습니다.(임시 포스팅) 대략 1980년대까지 인천의 행정, 업무, 금융, 문화, 예술, 상업, 교육, 종교 등의 중심지였던 동인천역~신포동~개항로일대 및 동구배다리, 동인천역 북광장 시장 일대는 현재 주안, 부평, 구월,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에 밀려서 많이 쇠락을 했습니다. 그나마 인천 중구청에서 뉴트로열풍을 타고 신포국제시장, 신포동, 개항로일대를 되살릴려고 노력을 하는데 "최초의 극장 애관극장 매입문제"등으로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인천대공원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인천 대공원에 인천수목원이 다시 개방을 한다고 해서 경인선 송내역에서 내려서 인천대공원에 갔다가 수목원이 문을 닫을것을 보고 날씨도 춥고 시간도 부족한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공항철도~인천지하철2호선 검암역에서 내려서 시천교에서 백석대교까지 아랏뱃길을 따라서 걸었습니다. 인천 서구 드림파크를 가기 위해서 서울 공항철도 검암역에서 내렸습니다. 나중에 드림파크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괜히 걸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교를 따라서 달리는 인천 지하철 2호선 전철입니다. 아라뱃길을 건너는 시천교 풍경입니다. 인천 지하철 2호선 철교입니다. 아라뱃길에 위치한 서해5도 수산물 복합문화센터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예전보다도 횟집들이 크게 줄었습니다. 한적한 아라뱃길 풍경입니다. 검암역 방면에서 드림파크로 넘어가기 위해서 백석대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드림파크로 향했습니다. 청라국제도시, 드림파크, 아라뱃길, 검단, 검암지구등이 전부다 보입니다.
인천 서구 검안역 근처 가을 핑크뮬리사진의 명소 드림파크 사진을 몇장, 올리겠습니다. 이번주 일요일에 이른 가을 추위가 온다고 해서 재빠르게 인천 가을 풍경 사진명소인 드림파크에 갔습니다. 워낙 많은 사진을 찍어서 우선 몇장 올리겠습니다.
인천 개항장거리에 위치한 도든아트하우스 서양화가 김선희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도든아트하우스의 외관입니다. 도든아트하우스 화단 풍경입니다. 갤러리 관장님이 젊은 시절 농업, 임업분야를 공부를 하셨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양한 화초들이 가을을 맞이하여 피어나고 있습니다. 갤러리 내부에는 '해와 달이 떨어지다'라는 명제로 작품전을 열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해와 달이 뜨고 사라짐을 목격한 작가가 결국 찰나와 스치는 인연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김선희 작가는 음과 양을 역동적으로 다루며 조화롭게 빚는 표현을 한다고 합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순환 속에서 서로 어울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상생의 길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커피와 커피 거름종이를 사용하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신문기사에 나온 개인전 소개인데 추상화면서도 풍경화적인 요..
인천시 미주홀구 도화동에 세워진 상수도 사업본부 일대 풍경입니다. 인천시에서 인천대학교를 이전시키고 남은 빈자리에 주민들의 반발로 세운 공공기관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수도사업본부 외에도 인천 지방 정부합동청사 등 공공기관과 아파트단지가 마치 "인천판 혁신도시"를 보는것 같은데 더 이상 할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찾아간 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 박물관입니다.~1 짜장면의 발생지로 유명한 인천 중구 차이나 타운에는 짜장면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벽돌건물이 인상적인 짜장면 박물관은 과거 공화춘 건물을 활용해서 박물관으로 개조를 했습니다. 인천은 개항 이후 청나라 출신의 화교들이 인천에 정착하면서 청나라 노동자들의 음식으로 짜장면이 개발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공화춘을 비롯한 청요릿집 훗날 중국집이라 불리우는 중국음식점들이 생겨났는데 나름 고급스러운 요식업 식당으로 발달한것 같습니다. 이 공화춘에는 다양한 중국음식들이 도자기식기에 담겨서 나왔다고 하는데 쿨리라고 불리우는 노동자들의 음식이 어떻게 해서 고급식당이였던 청요릿집에 메뉴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광복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청요릿집은 중국집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고급..
인천 중구청 일대 개항장거리 풍경입니다. 인천 개항이후에 일본인 거주지를 위한 일본 영사관으로 시작된 중구청은 1910년부터는 인천부청사로 활용이 되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인천시청사로 활용하고 1985년부터 인천 중구청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인천 중구청 앞 축대벽에는 인천 중구역사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